2025년 현재, 우리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거대한 물결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이 물결은 산업 구조와 사회 시스템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산(Asset)’이라고 인식하는 대상의 본질까지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과거의 자산이 토지, 건물, 귀금속과 같은 물리적 실체에 기반했다면, 이제는 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네트워크가 새로운 가치의 원천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중심에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과 ‘암호화폐(Cryptocurrency)’가 있습니다.
비트코인(Bitcoin)의 등장 이후, 암호화폐는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폭발적인 가격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투기적 광풍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블록체인(Blockchain)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세상에 알리고, 금융 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제 암호화폐는 단순히 ‘사이버 머니’를 넘어, 탈중앙화 금융(DeFi), 대체불가능토큰(NFT), 웹3(Web3) 등 새로운 디지털 경제 생태계의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어의 혼란은 여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거나, 그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개인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신사업 전략 수립과 정부의 정책 방향 설정에도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특히, 자산의 법적 성격은 과세, 규제, 상속 등 현실 세계의 다양한 법률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에, 두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 법적 정의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관련 법률과 제도를 정비해나가고 있습니다.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규제에 초점을 맞춘 1단계 입법이며, 현재 국회에는 디지털 자산 전반을 포괄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안이 발의되어 2단계 입법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이는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정의를 확립해나가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본 블로그 글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라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심도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70000자라는 방대한 분량에 걸쳐, 두 용어의 근본적인 차이점에서부터 기술적 특성, 다양한 유형, 그리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법적 정의와 규제 동향까지 총망라하여 다룰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는 정확히 어떻게 다른가?
- 암호화폐를 움직이는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은 무엇이며,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 비트코인, 이더리움 외에 어떤 종류의 암호화폐와 디지털 자산이 존재하는가?
- 대한민국 법률은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를 어떻게 정의하고 규제하고 있는가?
- 새롭게 등장하는 토큰 증권(STO), NFT, CBDC는 기존의 암호화폐와 어떻게 다른가?
- 미국, 유럽 등 해외 주요국은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규율하고 있으며, 글로벌 규제 동향은 어떠한가?
이 글이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든 분들께 깊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투자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개인 투자자부터,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가, 그리고 미래의 법과 제도를 고민하는 정책 입안자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유용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집필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자산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긴 여정을 함께 시작하겠습니다.
제1부: 개념의 이해 - 디지털 자산 vs. 암호화폐,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많은 용어들이 그렇듯,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 역시 명확한 정의 없이 혼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두 개념은 포함하는 범위와 본질적인 특성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는 첫걸음입니다.
1. 디지털 자산: 광범위한 디지털 형태의 모든 가치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은 이름 그대로 **‘디지털 형태로 존재하며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매우 넓은 개념입니다. 이는 특정 기술이나 형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저장하는 거의 모든 파일이 잠재적으로 디지털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1.1. 디지털 자산의 정의와 범위
디지털 자산을 법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국제적으로 통일된 정의는 없습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디지털 형태(Digital Form): 물리적 실체가 없으며, 0과 1의 이진 데이터(Binary Data)로 구성됩니다.
- 식별 가능성(Identifiable): 고유한 식별자나 메타데이터를 통해 다른 디지털 파일과 구별될 수 있습니다.
- 가치 보유(Value): 경제적, 사회적, 또는 개인적인 가치를 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가치는 교환 가치일 수도 있고, 사용 가치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감성적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 소유 및 통제 가능성(Ownable and Controllable): 특정 주체가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암호학적 기술(예: 개인 키)이나 법적 권리(예: 저작권)가 이를 보장합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디지털 자산의 범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습니다.
1.2. 디지털 자산의 다양한 유형과 사례
디지털 자산은 그 형태와 권리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습니다.
- 디지털 콘텐츠 (Digital Contents):
- 텍스트: 전자책(e-book), 온라인 뉴스 기사, 연구 논문, 워드 문서 등
- 이미지: 디지털 사진,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스톡 이미지 등
- 영상: 영화, 드라마, 유튜브 동영상, 온라인 강의, 뮤직비디오 등
- 음원: MP3, 스트리밍 음원 등
- 소프트웨어: 컴퓨터 프로그램,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운영체제(OS) 등
- 계정 정보 및 데이터 (Account Information & Data):
- 소셜 미디어 계정: 팔로워 수가 많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계정은 그 자체로 막대한 영향력과 광고 수익 창출 능력을 지닌 자산입니다.
- 게임 계정 및 아이템: 높은 레벨의 게임 캐릭터나 희귀한 게임 아이템은 사용자 간에 현금으로 거래될 만큼 명백한 자산 가치를 지닙니다.
- 도메인 이름: google.com이나 amazon.com과 같이 기억하기 쉽고 브랜드 가치가 높은 도메인 이름은 수백만,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디지털 부동산과 같습니다.
- 개인 및 기업 데이터: 빅데이터 시대에, 정제되고 분석된 데이터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 신제품 개발, 인공지능 학습 등에 필수적인 핵심 자산입니다.
- 전자적 증표 (Electronic Tokens):
- 전자화폐 및 선불전자지급수단: ‘T머니’나 ‘카카오페이 머니’처럼 법정화폐의 가치를 전자적으로 저장하여 지급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디지털 자산에 포함됩니다. 다만, 이들은 특정 발행 주체가 가치를 보증하고 법정화폐와의 교환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뒤에서 설명할 암호화폐와는 구별됩니다.
- 포인트 및 마일리지: 항공사 마일리지, 신용카드 포인트 등은 특정 서비스나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디지털 자산입니다.
- 암호화폐(Cryptocurrency): 바로 이 지점에서 암호화폐가 등장합니다. 암호화폐는 디지털 자산이라는 큰 집합 안에 포함되는 하나의 하위 카테고리입니다.
이처럼 디지털 자산은 암호화폐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입니다. 모든 암호화폐는 디지털 자산이지만, 모든 디지털 자산이 암호화폐인 것은 아닙니다. 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암호화폐: 분산원장기술과 암호학에 기반한 특별한 디지털 자산
암호화폐(Cryptocurrency)는 디지털 자산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기술적 특징을 가진 자산입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암호학(Cryptography)’**을 사용하여 거래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단위의 생성을 제어하며, 자산의 이전을 검증하는 디지털 통화(Currency) 또는 자산을 의미합니다.
2.1. 암호화폐의 핵심 기술적 특징
암호화폐를 다른 디지털 자산과 근본적으로 구별 짓는 기술적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분산원장기술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DLT):
- 암호화폐의 가장 핵심적인 기반 기술은 분산원장기술, 그리고 그 대표적인 구현 방식인 **블록체인(Blockchain)**입니다.
-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서는 은행과 같은 중앙 기관이 모든 거래 기록(원장)을 독점적으로 관리합니다. 만약 은행의 서버가 해킹당하거나 데이터가 위변조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반면, 분산원장기술은 거래 기록이 담긴 원장을 특정 기관이나 서버 한 곳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여러 컴퓨터(노드, Node)에 분산하여 복제하고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원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의 원장을 임의로 위변조하더라도 다른 참여자들의 원장과 비교를 통해 쉽게 적발할 수 있습니다. 과반수 이상의 노드를 동시에 해킹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위변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를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라고 합니다.
- 암호학 (Cryptography):
- 암호화폐는 다양한 암호학 기술을 통해 보안과 신뢰를 확보합니다.
- 공개 키/개인 키 (Public Key/Private Key): 사용자는 은행 계좌번호와 유사한 ‘공개 키(주소)’와 비밀번호와 유사한 ‘개인 키’를 갖게 됩니다. 자산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려면 자신의 개인 키로 전자 서명을 해야만 합니다. 개인 키를 분실하면 해당 주소에 있는 자산에 영원히 접근할 수 없게 되므로, 사용자 스스로가 자신의 자산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합니다.
- 해시 함수 (Hash Function): 거래 데이터는 해시 함수라는 수학적 함수를 통해 고정된 길이의 고유한 문자열(해시값)로 변환됩니다. 원본 데이터가 조금만 바뀌어도 해시값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데이터의 무결성을 검증하는 데 사용됩니다. 블록체인에서 각 블록은 이전 블록의 해시값을 포함하여 사슬(Chain)처럼 연결되므로, 중간의 블록 하나를 수정하면 그 뒤의 모든 블록의 해시값이 변경되어 위변조가 즉시 발각됩니다.
- 합의 알고리즘 (Consensus Algorithm):
- 중앙 관리자 없이도 분산된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거래의 유효성을 검증하고 원장에 기록할 내용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규칙 또는 프로토콜입니다.
- 작업증명(Proof of Work, PoW): 비트코인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매우 복잡한 수학 문제를 가장 먼저 푼 노드(채굴자)에게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고 장부에 기록할 권한과 함께 보상(새로운 암호화폐)을 주는 방식입니다. 막대한 양의 컴퓨팅 파워와 전력을 소모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지분증명(Proof of Stake, PoS): 이더리움(업그레이드 이후) 등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해당 암호화폐를 더 많이, 더 오래 보유한 노드(검증자)에게 블록 생성 권한을 더 많이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PoW에 비해 에너지 효율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위임지분증명(DPoS), 역사증명(PoH) 등 다양한 합의 알고리즘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2.2. 암호화폐의 분류: 코인(Coin) vs. 토큰(Token)
암호화폐는 기술적 구조에 따라 크게 ‘코인’과 ‘토큰’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코인 (Coin):
- 독자적인 블록체인 네트워크(메인넷)를 가진 암호화폐를 의미합니다.
- 이들은 해당 블록체인 생태계의 기축 통화 역할을 하며, 네트워크의 거래 수수료(가스비) 지불, 블록 생성에 대한 보상(채굴 또는 스테이킹 보상) 등에 사용됩니다.
- 예시: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솔라나(SOL), 리플(XRP) 등
- 토큰 (Token):
- 기존에 존재하는 다른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생성된 암호화폐를 의미합니다.
- 독자적인 메인넷을 구축하는 대신, 이더리움이나 솔라나와 같은 플랫폼의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기능을 이용하여 비교적 쉽게 발행할 수 있습니다.
- 특정 서비스나 프로젝트 내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 예시:
- ERC-20: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되는 토큰의 표준 규격입니다. 수많은 디파이(DeFi) 프로젝트 토큰, 유틸리티 토큰들이 ERC-20 표준을 따릅니다. (예: 유니스왑(UNI), 체인링크(LINK))
- NFT (Non-Fungible Token): 대체불가능토큰 역시 이더리움의 ERC-721이나 ERC-1155 표준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종류의 토큰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코인은 국가의 법정화폐(원화, 달러)와 같고, 토큰은 그 법정화폐를 기반으로 발행된 상품권이나 멤버십 포인트와 같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명확한 구분이 중요한 이유: 법적, 경제적 함의
그렇다면 이 두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여기에는 법적,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 규제의 범위와 대상:
- 정부와 규제 기관은 ‘디지털 자산’ 전체에 대해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 예를 들어,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디지털 콘텐츠와 금융 자산의 성격을 지닌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 또한, 같은 암호화폐라 할지라도 그 기능과 목적에 따라 증권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증권형 토큰), 단순한 지급결제 수단이나 서비스 이용권으로 분류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적용되는 법률과 규제 기관(예: 금융위원회 vs. 공정거래위원회)이 달라집니다.
- 자산의 본질과 가치 평가:
- 디지털 사진의 가치는 그 예술성이나 희소성에 의해 결정되지만, 암호화폐의 가치는 네트워크의 활성도, 기술적 우위, 커뮤니티의 신뢰, 그리고 거시 경제 상황 등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 특히, 중앙 발행 주체가 없는 암호화폐는 내재가치(intrinsic value)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 가치를 평가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기반 기술과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 권리 관계와 법적 보호:
- 게임 아이템의 소유권은 기본적으로 게임사의 서비스 약관에 귀속되는 경우가 많아, 서비스 종료 시 가치를 잃을 수 있습니다.
- 반면, 탈중앙화된 암호화폐는 개인 키를 소유한 사람이 온전한 통제권을 가집니다. 이는 강력한 자산 통제권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해킹이나 분실 시 법적으로 구제받기 어렵다는 위험을 내포합니다. 최근 제정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자산’은 디지털 형태의 모든 가치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우산이며, ‘암호화폐’는 그 우산 아래 있는 특별한 한 종류, 즉 분산원장기술과 암호학이라는 독특한 기술적 DNA를 가진 자산입니다. 이 둘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디지털 자산의 세계를 올바르게 탐색하기 위한 필수적인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제2부: 대한민국 법률 속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
개념적 차이를 이해했다면, 이제 우리의 현실 세계, 즉 대한민국 법률 체계가 이 새로운 자산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정의하는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법적 정의는 단순한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해당 자산의 법적 지위, 권리·의무 관계, 규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점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디지털 자산 시장의 성장과 함께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단계적인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단계로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었고, 2단계로 시장 질서 확립과 산업 육성을 포괄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 두 법률을 중심으로 한국의 법적 정의를 심도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1.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과 최초의 법적 정의
대한민국 법률에 암호화폐와 유사한 개념이 처음으로 명시된 것은 자금세탁방지(AML) 및 테러자금조달금지(CFT)를 목적으로 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이 개정되면서부터입니다. 2021년 3월 시행된 개정 특금법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권고안을 반영하여 ‘가상자산’과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1.1. 특금법상 ‘가상자산(Virtual Asset)’의 정의
특금법 제2조 제3호는 ‘가상자산’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그에 관한 일체의 권리를 포함한다)를 말한다.”
이 정의는 매우 포괄적으로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뒤에 따라오는 제외 조항입니다. 특금법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가상자산의 범위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습니다.
- 가. 화폐·재화·용역 등으로 교환될 수 없는 전자적 증표 또는 그 증표에 관한 정보로서 발행인이 사용처와 그 용도를 제한한 것
- 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제1항제7호에 따른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 (게임머니, 게임아이템 등)
- 다. 「전자금융거래법」 제2조제14호에 따른 선불전자지급수단 및 같은 조 제15호에 따른 전자화폐
- 라. 거래 형태와 특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서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전자적 증표
- 「주식·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전자등록주식등
- 「상법」에 따라 신탁의 수익권이 표시된 것
- 마. 「조세특례제한법」 제117조의10제1항에 따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1.2. 특금법상 정의의 의미와 한계
특금법의 정의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암호화폐’ 대신 ‘가상자산’ 용어 사용: 정부와 입법부는 ‘화폐(currency)’라는 단어가 주는 법정화폐(legal tender)로서의 오인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상자산(virtual asset)’이라는 용어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가상자산이 지급결제 수단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지 않음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입니다.
- 경제적 가치와 전자적 거래/이전 가능성: 가상자산으로 인정받기 위한 핵심 요건은 ‘경제적 가치’와 ‘전자적 방식의 거래/이전 가능성’입니다. 이는 곧 시장에서 교환 가치를 가지고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 Negative 방식의 정의: 무엇이 가상자산인지를 일일이 열거하는 대신, 무엇이 가상자산이 아닌지를 규정하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유연하게 포섭하기 위함입니다.
- 명확한 제외 대상: 게임머니, 선불전자지급수단(카카오페이 머니 등), 전자화폐, 전자등록된 증권 등을 명확히 제외함으로써, 기존 법률 체계와의 충돌을 피하고 규제의 범위를 한정했습니다. 특히, 향후 발행될 CBDC 역시 가상자산에서 제외될 것임을 명시한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하지만 특금법의 정의는 자금세탁방지라는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명백한 한계를 가집니다. 가상자산의 본질적인 법적 성격(민법상 물건인지, 재산권인지 등), 투자자 보호, 시장 질서 유지 등 자본시장 규제의 관점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입니다.
2.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이용자 보호 중심의 접근
2022년 테라-루나 사태, 2023년 FTX 파산 등 대규모 투자자 피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시급한 이용자 보호 조치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국회는 2024년 7월 19일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디지털 자산 시장 규제의 ‘1단계 법안’으로 불리며,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규제라는 두 가지 핵심 축으로 구성됩니다.
2.1.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상 ‘가상자산’의 정의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2조 제1호는 가상자산의 정의를 특금법의 정의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3호에 따른 가상자산을 말한다.”
다만, 법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한 가지 중요한 제외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은 제외한다.”
- 가. 제2호에 따른 가상자산사업자가 아닌 자가 발행한 가상자산으로서... (중략) ... 다른 가상자산으로 교환될 수 없는 경우
- 나. 「주식·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전자등록주식등 (토큰 증권)
- 다. 「상법」에 따라 신탁의 수익권이 표시된 것
- 라. 그 밖에 가상자산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그 실질이 가목부터 다목까지의 자산 등과 유사한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
- 마. 「콘텐츠산업 진흥법」에 따른 콘텐츠로서 「저작권법」에 따른 저작물 또는 저작인접물의 이용허락 범위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서 다른 가상자산과 연계하여 재화 또는 용역의 지급이 불가능한 경우 (일부 NFT)
- 바. 「조세특례제한법」 제117조의10제1항에 따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2.2.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상 정의의 주요 특징
이 법의 정의는 특금법의 기반 위에서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을 더 명확히 합니다.
- 토큰 증권(Security Token)의 명확한 제외: 금융위원회가 2023년 2월 ‘토큰 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하며 제도권 편입을 예고한 토큰 증권은 가상자산이 아니므로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했습니다. 토큰 증권은 형태는 디지털 토큰이지만 그 실질이 ‘증권’이므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게 됩니다.
- NFT(대체불가능토큰)에 대한 판단 기준 제시: NFT의 법적 성격에 대한 논란이 많은 가운데, 이 법은 **‘콘텐츠 이용허락’**의 성격을 가지며 다른 가상자산(암호화폐)과 연계하여 결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는 NFT는 가상자산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모든 NFT를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대신, 그 실질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NFT가 투자나 결제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면 가상자산으로 분류되어 이 법의 규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 CBDC의 재확인: 특금법과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이 발행할 디지털화폐(CBDC)는 가상자산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2.3. 법의 핵심 내용: 이용자 자산 보호 및 불공정거래 규제
이 법의 진정한 의의는 정의 규정 자체보다, 그에 따른 구체적인 규제 내용에 있습니다.
- 이용자 예치금 및 가상자산 보호 의무 강화:
- 가상자산사업자(거래소 등)는 이용자의 예치금을 은행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예치 또는 신탁하여 고유재산과 분리·관리해야 합니다.
- 이용자의 가상자산은 동일한 종류와 수량으로 실질적으로 보유해야 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예: 70% 이상)을 인터넷과 분리된 안전한 환경(콜드월렛, Cold Wallet)에 보관해야 합니다.
- 해킹이나 전산장애 등 사고에 대비하여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해야 합니다.
-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 미공개중요정보 이용행위: 가상자산 발행자, 사업자 및 관련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하여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여 가상자산 거래를 하거나 타인에게 이용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주식 시장의 내부자 거래 규제와 유사)
- 시세조종행위: 특정 가상자산의 매매를 유인할 목적으로 매매가 성황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시세를 인위적으로 변동 또는 고정시키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자전 거래, 허수 주문 등 포함)
- 부정거래행위: 부정한 수단, 계획, 기교를 사용하거나, 중요 사항에 대해 거짓을 기재하거나, 허위의 시세를 이용하는 등 투자자의 오해를 유발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얻으려는 모든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합니다.
이러한 규정들은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가상자산 시장에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질서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상자산의 발행, 공시, 유통, 자문 등 시장 전반을 규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2단계 입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3. 「디지털자산기본법」(안)과 미래의 규제 프레임워크
현재 국회에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서 다루지 못한 영역을 포괄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되어 논의 중입니다. 이 법안들은 명칭과 세부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디지털 자산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포괄적인 규제 체계를 마련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3.1.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의 ‘디지털자산’ 정의
대표적으로 발의된 법안 중 하나인 민병덕 의원안(2025. 6. 10. 대표발의)은 ‘디지털자산’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분산원장기술 또는 이와 유사한 기술을 사용하여 생성 또는 저장되고 전자적 방식으로 이전 또는 거래가 가능한 재산적 가치를 가진 것을 말한다.”
이 정의는 기존의 ‘가상자산’보다 더 넓고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 ‘디지털자산’으로 용어 확장: ‘가상자산’을 넘어, 분산원장기술에 기반한 모든 재산적 가치를 포괄하는 ‘디지털자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향후 등장할 다양한 형태의 기술 기반 자산을 아우르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 기술적 요건 명시: **‘분산원장기술 또는 이와 유사한 기술’**을 핵심 요건으로 명시하여, 기술적 기반이 없는 다른 디지털 파일(예: 단순 이미지 파일) 등과 명확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 포괄적 정의: 이 법안은 디지털 자산을 다시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스테이블코인)’**과 그 외 **‘일반 디지털자산’**으로 분류하고, 증권에 해당하는 ‘토큰 증권’은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여 자본시장법의 규율을 받도록 하는 체계를 제안합니다.
3.2.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의 핵심 내용 (예상)
현재 논의 중인 법안들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향후 제정될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내용을 담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디지털자산의 발행(ICO 등) 및 공시 규제:
- 디지털자산을 발행하려는 자는 사업 계획, 기술 설명, 위험 요인 등을 담은 **백서(White Paper)**를 금융당국에 제출하고 투자자에게 공시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주식 시장의 증권신고서와 유사한 역할을 합니다.
- 부실하거나 허위인 백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엄격히 규제할 것입니다.
- 디지털자산사업자(VASP)의 영업행위 규제:
- 단순 거래 중개 외에, 디지털자산 매매, 자문, 평가, 공시, 자산관리(커스터디) 등 다양한 영업 행위를 유형별로 정의하고, 각각에 대한 인가·등록 요건과 행위 규칙을 마련할 것입니다.
- 이해상충 방지 의무, 최선집행 의무, 설명 의무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엄격한 영업행위 규칙이 도입될 것입니다.
-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에 대한 규제:
- 법정화폐나 특정 자산을 담보로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제 체계가 마련될 것입니다.
- 발행자의 자격 요건, 준비자산의 구성 및 외부 감사 의무, 상환 보장 의무 등을 규정하여 ‘테라-루나 사태’와 같은 뱅크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 자율규제기구 설립 및 역할:
- 정부의 직접 규제와 더불어, 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율규제기구(SRO, Self-Regulatory Organization)를 설립하여 상장 및 상장 폐지에 대한 심사, 시장 감시, 분쟁 조정 등의 역할을 맡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2단계 입법이 완료되면, 대한민국은 비로소 디지털 자산 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법률 프레임워크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이는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투자자를 두텁게 보호하며, 관련 산업의 건전한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4. 표로 정리하는 대한민국 법률 속 용어 비교
구분 | 특금법상 ‘가상자산’ |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상 ‘가상자산’ | 디지털자산기본법(안)상 ‘디지털자산’ | 자본시장법상 ‘토큰 증권’ |
정의 | 경제적 가치를 지닌 전자적 증표 (Negative 방식) | 특금법 정의와 동일 + 일부 NFT, CBDC 등 추가 제외 | 분산원장기술 기반의 재산적 가치를 가진 것 |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분산원장기술을 활용해 디지털화한 것 |
핵심 목적 | 자금세탁방지(AML) | 이용자 자산 보호, 불공정거래 규제 | 시장 질서 확립, 산업 육성 등 포괄적 규율 | 투자자 보호, 자본시장 규제 |
주요 내용 |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의무, 자금세탁방지 의무 | 예치금 분리보관, 콜드월렛 보관 의무, 불공정거래행위(미공개정보, 시세조종 등) 금지 | 발행(ICO) 및 공시 규제, 사업자 영업행위 규제, 스테이블코인 규제 등 | 증권 발행·공시 규제, 영업 인가, 불공정거래 규제 등 자본시장법 전면 적용 |
포함 여부 | ||||
일반 암호화폐 (비트코인 등) | O | O | O | X |
토큰 증권 (STO) | X | X | X | O |
CBDC | X | X | X | X |
결제/투자 성격의 NFT | O (해석상 가능) | O (해석상 가능) | O | △ (증권성 판단 필요) |
수집/콘텐츠 성격의 NFT | X | X | X | X |
이처럼 대한민국의 법체계는 ‘디지털 자산’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그 실질에 따라 **‘가상자산’(암호화폐 등)**과 **‘토큰 증권’**을 명확히 분리하여 각각 다른 법률(가상자산 관련법 vs. 자본시장법)로 규율하는 **‘이원적 규제체계(Dual System)’**를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적 프레임워크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에서 디지털 자산 관련 사업을 하거나 투자를 할 때 반드시 숙지해야 할 필수적인 지식입니다.
제3부: 디지털 자산의 스펙트럼 - 암호화폐를 넘어선 다양한 가치들
지금까지 우리는 ‘디지털 자산’이 ‘암호화폐’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며, 법적으로도 그 실질에 따라 다르게 취급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시야를 더 넓혀, 암호화폐의 범주를 넘어서는 다양한 디지털 자산의 유형과 그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최근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토큰 증권(Security Token), 대체불가능토큰(NFT), 그리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겠습니다. 이들은 각각 전통 금융, 예술·콘텐츠, 그리고 국가 통화 시스템과 결합하여 디지털 자산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1. 토큰 증권(Security Token): 전통 금융과 블록체인의 결합
토큰 증권(Security Token), 또는 증권형 토큰은 디지털 자산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증권(Security)’**을 디지털화한 것으로, 전통적인 자본시장과 새로운 디지털 자산 시장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합니다.
1.1. 토큰 증권이란 무엇인가?
금융위원회의 정의에 따르면, **토큰 증권(STO, Security Token Offering)**은 **“분산원장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Digitalization)한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담는 그릇’이 아니라 **‘담긴 내용물’**입니다. 토큰 증권은 발행 형태가 ‘토큰’일 뿐, 그 본질과 법적 성격은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하는 ‘증권’**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은 대표적으로 다음 6가지를 포함합니다.
- 채무증권 (Debt Securities): 국채, 지방채, 회사채 등
- 지분증권 (Equity Securities): 주식, 신주인수권증서 등
- 수익증권 (Beneficiary Certificates): 신탁의 수익권, 자산유동화증권(ABS) 등
- 투자계약증권 (Investment Contract Securities): 특정 사업에 공동으로 투자하고, 주로 타인이 수행한 사업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받는 계약상의 권리
- 파생결합증권 (Derivatives-linked Securities): ELS, DLS 등 기초자산의 가치 변동과 연계된 증권
- 증권예탁증권 (Depositary Receipts): DR
토큰 증권은 이러한 전통적인 증권을 블록체인 상의 토큰 형태로 발행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건물의 소유권을 100만 개의 토큰으로 쪼개어 발행하면, 각 토큰은 해당 건물의 지분을 나타내는 ‘부동산 수익증권’의 성격을 지닌 토큰 증권이 됩니다.
1.2. 토큰 증권 vs. 일반 암호화폐(비증권형 토큰)
토큰 증권은 일반적인 암호화폐(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상의 ‘가상자산’)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구분 | 토큰 증권 (Security Token) | 일반 암호화폐 (Utility/Payment Token) |
법적 성격 | 증권 (Security) | 증권이 아닌 전자적 증표 |
적용 법률 | 자본시장법, 전자증권법 |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특금법 등 |
기초자산 | 부동산, 매출채권, 주식, 미술품 등 실물 또는 금융자산에 기반 | 자체 네트워크 또는 서비스 (기초자산이 없는 경우가 많음) |
가치 기반 | 기초자산의 가치(임대료, 배당, 이자 등) 및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 | 네트워크의 성장, 수요와 공급, 커뮤니티의 신뢰 등 |
권리의 내용 | 발행인에 대한 청구권 (배당청구권, 이자청구권, 지분권 등) | 특정 서비스 이용권, 투표권(거버넌스), 지급결제 수단 등 |
규제 기관 |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 금융위원회(FIU), 검찰, 공정위 등 (성격에 따라 다름) |
**‘Howey Test’**는 미국에서 특정 자산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유명한 기준으로, ①금전 투자, ②공동 사업, ③수익에 대한 합리적 기대, ④타인의 노력에 의한 이익 창출이라는 4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증권으로 봅니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준으로 증권성을 판단하며, 이 기준에 부합하는 암호화폐는 모두 ‘토큰 증권’으로 분류되어 자본시장법의 엄격한 규제를 받아야 합니다.
1.3. 토큰 증권의 잠재력과 기대효과
토큰 증권은 기존 금융 시장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창출할 잠재력이 매우 큽니다.
- 자산 유동화의 확대: 그동안 유동화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자산들(예: 소규모 상업용 부동산, 미술품, 음원 저작권, 인프라 자산)을 잘게 쪼개어(지분 분할) 토큰으로 발행함으로써, 소액 투자자들도 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됩니다.
- 거래 비용 절감 및 효율성 증대: 블록체인의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하면 증권의 발행, 청산, 결제 과정을 자동화하여 중간 매개 비용(증권사, 예탁결제원 등의 수수료)을 절감하고, 24시간 365일 거래가 가능한 효율적인 시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새로운 금융 상품의 등장: 다양한 기초자산과 권리를 조합하여 기존에 없던 혁신적인 구조의 금융 상품을 설계하고 발행하는 것이 용이해집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토큰 증권을 제도권 내로 포섭하기 위해 전자증권법 개정을 통해 분산원장 기술을 증권의 발행 및 관리 방식으로 인정하고, 투자계약증권과 수익증권이 유통될 수 있는 소규모 장외거래중개업자(브로커) 제도를 신설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토큰 증권 시장은 전통 금융기관과 핀테크/블록체인 기업들의 새로운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 대체불가능토큰(NFT): 디지털 소유권의 증명
NFT(Non-Fungible Token), 즉 대체불가능토큰은 2021년 디지털 아트 시장을 강타하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비트코인이나 일반적인 토큰이 서로 동일한 가치를 가져 교환이 가능한 ‘대체가능한(Fungible)’ 자산인 것과 달리, NFT는 각각의 토큰이 고유한 정보를 담고 있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대체불가능한(Non-Fungible)’ 자산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2.1. NFT의 기술적 원리와 본질
NFT의 본질은 **‘디지털 파일에 대한 소유권 또는 진위성을 증명하는 블록체인 상의 등기부등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고유한 식별값: NFT는 이더리움의 ERC-721이나 ERC-1155와 같은 특정 표준에 따라 만들어지며, 각 토큰에는 고유한 토큰 ID와 메타데이터(창작자 정보, 작품 설명, 원본 파일 링크 등)가 기록됩니다. 이 정보는 블록체인에 영구적으로 저장되어 위변조가 불가능합니다.
- 소유권의 증명: 특정 NFT를 소유한다는 것은 해당 NFT가 저장된 블록체인 주소의 개인 키를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누구나 해당 NFT의 현재 소유자와 과거 거래 이력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NFT 자체가 디지털 파일(이미지, 영상 등)을 블록체인에 저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NFT는 원본 파일이 저장된 외부 서버(예: IPFS - 탈중중앙화 파일 시스템)를 가리키는 ‘링크’와 메타데이터만을 블록체인에 기록합니다. 따라서 NFT의 가치는 블록체인 기술이 보장하는 ‘소유권 증명’의 가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 NFT의 다양한 활용 분야
NFT의 활용 범위는 예술 분야를 넘어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 디지털 아트 및 수집품: 디지털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NFT로 발행하여 판매함으로써, 중간 갤러리 없이 전 세계 수집가들과 직접 거래하고, 재판매될 때마다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예: 크립토펑크, BAYC - Bored Ape Yacht Club)
- 게임: 게임 내의 희귀 아이템, 캐릭터, 토지 등을 NFT로 만들어 유저가 진정한 소유권을 갖게 하고, 게임 외부의 마켓플레이스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합니다. (P2E - Play to Earn 모델)
- 멤버십 및 티켓: 콘서트 티켓, 스포츠 경기 입장권, 고급 회원권 등을 NFT로 발행하여 위조를 방지하고, 소유자에게 특별한 혜택(에어드랍, 팬미팅 참여권 등)을 제공하는 용도로 활용됩니다.
- 디지털 신원 증명: 개인의 학력, 경력, 자격증 등을 NFT 형태로 발급하여 위변조가 불가능한 디지털 신분증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부동산 및 실물 자산 연계: 실물 자산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증서를 NFT로 발행하여 거래의 투명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토큰 증권의 성격을 가질 수 있음)
2.3. NFT의 법적 성격과 과세 논란
NFT의 법적 성격은 아직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아 많은 논쟁을 낳고 있습니다.
- 가상자산인가? 증권인가? 아니면 제3의 무엇인가?: 앞서 살펴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결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는 콘텐츠 이용허락 성격의 NFT는 가상자산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이는 반대로 투자 목적이 강하거나 다른 암호화폐와 쉽게 교환되는 NFT는 가상자산으로 분류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만약 NFT가 특정 프로젝트의 수익을 배분받을 권리를 나타낸다면 ‘토큰 증권’으로 분류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NFT는 그 실질에 따라 법적 성격이 달라지는 ‘카멜레온’ 같은 자산입니다.
- 과세 문제: NFT 거래로 발생한 소득에 대한 과세 역시 뜨거운 감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가상자산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를 2025년까지 유예한 상태입니다. 향후 과세가 시행될 경우, NFT가 가상자산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따라 과세 대상이 결정될 것입니다. 만약 미술품과 같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된다면 또 다른 과세 기준이 적용될 수 있어, 명확한 법적 정의와 과세 기준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3.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국가가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법정화폐를 의미합니다. 이는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전자화폐(카카오페이 머니 등)나 탈중앙화된 암호화폐(비트코인 등)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3.1. CBDC의 개념과 특징
CBDC는 국가의 통화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입니다.
- 중앙은행의 직접 부채: 우리가 사용하는 현금(지폐, 동전)이 한국은행의 부채인 것처럼, CBDC는 중앙은행이 국민 개개인이나 기업에게 직접 지는 부채입니다. 이는 상업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예금자보호 한도와 상관없이 국가가 그 가치를 100%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가장 안전한 형태의 디지털 자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법정화폐(Legal Tender): CBDC는 법적으로 모든 거래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는 강제통용력을 가집니다. 이는 비트코인 등 민간 암호화폐가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 발행 형태: CBDC는 계좌 기반(Account-based) 방식과 토큰 기반(Token-based)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토큰 기반 CBDC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현금처럼 익명성을 일부 보장하는 형태로 설계될 수 있습니다.
3.2. CBDC vs. 암호화폐 vs. 전자화폐
CBDC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다른 디지털 결제 수단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구분 |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CBDC) | 민간 암호화폐 (비트코인 등) | 상업은행 예금 / 전자화폐 |
발행 주체 | 중앙은행 (국가) | 민간 (알고리즘, 네트워크 참여자) | 민간 (상업은행, 핀테크 기업) |
신용 위험 | 없음 (무위험 자산) | 높음 (발행 주체 부재, 가격 변동성) | 있음 (은행 파산 위험 → 예금자보호) |
법적 성격 | 법정화폐 (강제통용력 O) | 자산 (강제통용력 X) | 은행/기업에 대한 청구권 |
중앙화/탈중앙화 | 중앙화 (Centralized) | 탈중앙화 (Decentralized) | 중앙화 (Centralized) |
목적 | 통화정책 효율성 제고, 지급결제 시스템 안정화, 금융 포용 등 | P2P 전자현금 시스템, 가치 저장, 새로운 금융 생태계 구축 등 | 효율적인 지급결제, 송금 등 |
3.3. CBDC 도입의 기대효과와 우려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CBDC 연구 및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 기대효과 때문입니다.
- 기대효과:
- 통화정책의 효율성 증대: 마이너스 금리 정책과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보다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 지급결제 시스템 혁신: 민간 빅테크 기업의 지급결제 시장 독점을 견제하고, 저렴하고 효율적인 결제 시스템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 금융 포용성 제고: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도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디지털 지갑을 통해 기초적인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 불법 자금 추적: 모든 거래 기록이 (정부에 의해) 추적 가능해지므로, 자금 세탁, 탈세 등 불법적인 금융 활동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 우려 및 과제:
-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 침해: 국가가 모든 국민의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빅 브라더’의 출현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큽니다.
- 금융 시스템 불안정성: 위기 상황 시, 사람들이 상업은행 예금을 대거 인출하여 안전한 CBDC로 옮겨가는 ‘디지털 뱅크런’이 발생하여 금융 시스템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기술적 안정성 및 보안: 국가 기간망인 만큼, 해킹이나 시스템 장애로부터 절대적으로 안전한 기술적 구현이 필요합니다.
한국은행 역시 모의실험 연구를 통해 CBDC의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검증하고 있으며, 실제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CBDC의 도입은 단순히 새로운 결제 수단 하나가 추가되는 것을 넘어, 국가 경제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토큰 증권, NFT, CBDC는 각각 금융, 문화, 통화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블록체인 및 디지털 기술과 융합하며 ‘디지털 자산’의 외연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들의 등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존의 법과 제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제4부: 글로벌 규제 동향 - 세계는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디지털 자산은 국경을 넘나들며 24시간 거래되는 글로벌 자산입니다. 따라서 한 국가의 규제만으로는 시장을 온전히 관리하기 어렵습니다. 국제적인 공조와 각국의 규제 동향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대한민국 규제 환경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들은 각기 다른 철학과 방식으로 디지털 자산 규제 체계를 수립해나가고 있습니다.
1. 미국: 규제 불확실성 속 주도권 다툼
미국은 세계 최대의 자본시장을 가진 국가답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규제 프레임워크는 아직 파편화되어 있고 불확실성이 큰 상황입니다. 여러 규제 기관들이 각자의 관할권을 주장하며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 특징입니다.
1.1. 증권거래위원회(SEC) vs.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미국 규제의 핵심에는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간의 해묵은 갈등이 있습니다.
- 증권거래위원회 (SEC -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 관점: 대부분의 암호화폐(특히 ICO를 통해 판매된 토큰)를 **‘증권(Security)’**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 주요 논리: 앞서 언급된 **‘Howey Test’**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투자자들이 수익을 기대하고 타인의 노력에 의존하여 자금을 투입했다면 이는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므로 자본시장법(증권법)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 행보: SEC는 리플(XRP), 코인베이스 등 여러 암호화폐 프로젝트 및 거래소를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기소하며 ‘집행을 통한 규제(Regulation by Enforcement)’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현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비트코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토큰이 증권일 가능성이 높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 상품선물거래위원회 (CFTC - 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
- 관점: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탈중앙화된 주요 암호화폐를 **‘상품(Commodity)’**으로 간주합니다.
- 주요 논리: 상품은 증권과 달리 내재가치보다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원자재(금, 원유, 농산물 등)와 유사한 성격을 가집니다. CFTC는 이러한 암호화폐의 현물 시장보다는 이들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선물, 옵션) 시장을 감독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 행보: CFTC는 SEC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 친화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며,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명확한 규제 권한을 부여받기 위해 의회에 적극적으로 로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 기관의 관할권 다툼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큰 법적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어떤 암호화폐가 증권인지 상품인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하여, 기업들은 혁신적인 서비스를 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1.2. 의회의 입법 노력과 행정부의 방향
이러한 규제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의회에서도 여러 법안이 발의되며 초당적인 입법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주요 법안: ‘책임 있는 금융 혁신법(Lummis-Gillibrand 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 ‘21세기를 위한 금융 혁신 및 기술 법안(FIT21 Act)’ 등은 디지털 자산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SEC와 CFTC 간의 관할권을 배분하며, 소비자 보호 및 스테이블코인 규제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 바이든 행정부: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디지털 자산의 책임 있는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소비자 보호, 금융 안정, 불법 금융 방지, 미국의 기술 리더십 유지, 금융 포용, 책임 있는 혁신이라는 6대 목표를 제시하고 범정부 차원의 연구와 정책 조율을 지시했습니다.
1.3. 스테이블코인 규제
미국은 특히 달러 패권과 직결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높은 경각심을 가지고 규제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의회와 재무부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은행과 유사한 수준으로 규제하고, 엄격한 준비금 요건과 감독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규제 방향은 여전히 유동적이지만, 향후 제정될 법률이 SEC와 CFTC의 역할을 어떻게 조율하고, 어떤 자산을 증권으로 분류할지에 따라 전 세계 디지털 자산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2. 유럽연합(EU): 세계 최초의 포괄적 규제안 MiCA
유럽연합(EU)은 미국과 달리, 단일 시장의 이점을 활용하여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암호화폐 규제 프레임워크인 **「MiCA(Markets in Crypto-Assets)」**를 마련하여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MiCA는 EU 27개 회원국 전체에 직접 적용되는 통일된 규정으로, 법적 확실성을 제공하고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1. MiCA의 주요 내용
MiCA는 암호화폐를 그 기능과 리스크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각각에 대한 맞춤형 규제를 적용합니다.
- 자산준거토큰 (ART - Asset-Referenced Tokens):
- 법정화폐가 아닌 여러 자산(예: 금, 다른 암호화폐 등)이나 통화 바스켓을 담보로 가치를 안정시키는 스테이블코인을 의미합니다. (과거 페이스북의 ‘리브라’와 유사)
- 발행자는 EU 내에 설립되어야 하며, 유럽은행감독청(EBA)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엄격한 준비금 요건과 지배구조, 공시 의무를 준수해야 합니다.
- 전자화폐토큰 (EMT - E-money Tokens):
- 단일 법정화폐(예: 유로, 달러)와 1:1로 가치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을 의미합니다.
- 발행자는 신용기관 또는 전자화폐기관으로 인가를 받아야 하며, 전자화폐지침(EMD2)에 따른 엄격한 규제를 받습니다. 준비금은 모두 해당 법정화폐와 동일한 통화로 안전한 자산에 예치해야 합니다.
- 그 외 모든 암호자산 (유틸리티 토큰 등):
- ART나 EMT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암호자산을 포괄합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및 일반 유틸리티 토큰 등)
- 발행자는 백서(White Paper)를 작성하여 관할 당국에 신고하고 웹사이트에 게시해야 합니다. 백서에는 프로젝트, 권리 및 의무, 기반 기술, 위험 요소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포함되어야 하며, 허위 또는 오해를 유발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발행자가 법적 책임을 집니다.
2.2. 암호자산서비스제공업자(CASPs) 규제
MiCA는 거래소, 지갑 서비스 제공자, 자문사 등 **암호자산서비스제공업자(CASPs)**에 대한 통일된 규제도 도입했습니다.
- CASP는 EU 회원국 중 한 곳에서 인가를 받으면, ‘단일 패스포트(Single Passport)’ 제도에 따라 별도의 인가 없이 다른 26개 회원국에서도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습니다.
- 이들은 고객 자산 보호, 이해상충 방지, 건전한 경영, 시장 남용 방지 등 엄격한 운영 요건을 준수해야 합니다.
2.3. MiCA의 의의와 한계
MiCA는 세계 주요 경제권 중 최초로 디지털 자산에 대한 포괄적이고 명확한 법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이는 기업들에게 법적 확실성을 제공하여 유럽 시장에서의 사업 확장을 촉진하고, 이용자 보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MiCA 역시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NFT, 탈중앙화 금융(DeFi), 그리고 CBDC는 MiCA의 직접적인 규제 범위에서 제외되어 있어, 향후 별도의 입법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iCA는 전 세계 디지털 자산 규제의 중요한 선례이자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3. 일본: 산업 육성과 규제의 균형
일본은 과거 마운트곡스(Mt. Gox) 거래소 해킹 사태라는 큰 홍역을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암호화폐 규제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일본의 규제는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관련 산업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3.1. 「자금결제법」과 「금융상품거래법」 중심의 규제
일본은 기존의 금융 관련 법률을 개정하여 암호화폐를 규율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자금결제법」:
- 암호화폐(일본에서는 **‘암호자산(暗号資産)’**으로 용어 변경)를 법적으로 인정된 결제 수단 중 하나로 정의합니다.
- 암호자산 거래소(교환업자)에 대해 금융청(FSA)에 등록할 의무를 부과하고, 자금세탁방지, 이용자 자산 분리보관, 시스템 보안 등 엄격한 규제를 적용합니다.
- 「금융상품거래법」:
- ICO 등을 통해 발행되는 토큰이 **‘투자적 성격’**을 가질 경우, 이를 ‘전자적으로 기록된 이전 가능한 권리(일명 ‘토큰화된 증권’)’로 간주하여 금융상품거래법의 엄격한 공시 및 판매 규제를 적용합니다. 이는 한국의 토큰 증권 규제와 유사한 접근 방식입니다.
3.2. 스테이블코인과 자율규제
- 스테이블코인 규제: 일본은 2023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포괄적인 법률을 시행했습니다.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을 ‘전자결제수단’으로 정의하고, 발행 주체를 은행, 신탁회사, 자금이체업자 등으로 제한하며, 반드시 법정화폐로 가치가 담보되고 이용자의 상환권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 자율규제기구(SRO)의 역할: 일본은 금융청의 감독 하에 업계 자율규제기구인 **일본암호자산거래업협회(JVCEA)**가 실질적인 시장 규율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JVCEA는 신규 암호자산 상장 심사, 불공정거래 방지 규칙 제정 등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에서 자율규제를 시행하며 정부 규제를 보완합니다.
일본의 사례는 정부의 감독과 산업계의 자율성이 조화를 이루며 안정적인 규제 환경을 구축한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으며, 한국의 2단계 입법 과정에서도 중요한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4. 기타 국가 및 국제기구 동향
-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을 중심으로 소비자 보호에 중점을 둔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MiCA와 유사한 포괄적인 규제 체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싱가포르 & 홍콩: 아시아의 금융 허브 자리를 놓고 경쟁하며, 명확한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관련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크립토 허브’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중국: 자국 내 암호화폐 채굴과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통제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자체적인 CBDC인 ‘디지털 위안화(e-CNY)’ 개발 및 상용화에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각국에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조달금지를 위한 암호화폐 규제 기준을 제시하고 이행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상자산사업자가 자금 이전 시 송금인과 수취인의 정보를 수집·제공하도록 하는 **‘트래블 룰(Travel Rule)’**은 전 세계 거래소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 금융안정위원회(FSB) &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암호자산 및 디파이(DeFi) 리스크를 평가하고, 국제적으로 일관된 규제 원칙을 수립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저마다의 상황과 철학에 따라 디지털 자산 규제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①이용자 보호 강화, ②자금세탁 방지, ③증권성 여부에 따른 차등 규제, ④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감독 강화라는 큰 흐름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로벌 규제 동향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입니다.
결론: 새로운 자산 클래스의 부상, 명확한 이해와 유연한 대응이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70000자라는 긴 호흡을 통해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의 세계를 깊숙이 탐험했습니다. 두 개념의 근본적인 차이에서부터 시작하여, 복잡하게 얽힌 기술적 특성, 대한민국과 주요국의 법적 정의 및 규제 동향, 그리고 암호화폐를 넘어 토큰 증권, NFT, CBDC로 확장되는 디지털 자산의 광활한 스펙트럼까지, 가능한 모든 측면을 종합적으로 조망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긴 여정을 통해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명확합니다. 디지털 자산은 더 이상 일부 기술 애호가나 투기꾼들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경제와 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자산 클래스(Asset Class)**로 당당히 부상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자산’은 분산원장기술이라는 혁신적 DNA를 품고 태어난 ‘암호화폐’를 포함하는, 훨씬 더 넓고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디지털 콘텐츠에서부터 게임 아이템, 토큰화된 부동산, 그리고 미래 국가의 통화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는 무한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단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규제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실질’, 즉 권리의 내용과 경제적 기능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입법 과정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증권의 성격을 가진 것은 **‘토큰 증권’**으로 분류하여 전통적인 자본시장법의 엄격한 틀 안에서 투자자를 보호하고, 증권이 아닌 경제적 가치를 지닌 전자적 증표는 **‘가상자산’**으로 정의하여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발행과 유통, 다양한 사업자들의 영업 행위를 포괄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라는 2단계 입법을 통해 이 새로운 시장의 질서와 성장을 모두 담아낼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닌, **‘혁신을 품는 규제’**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입니다.
미국의 규제 불확실성과 EU의 포괄적 규제안 MiCA, 그리고 일본의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국경 없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글로벌 표준과의 조화는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법률 및 금융 환경에 맞는 최적의 규제 체계를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섣부른 규제는 혁신의 싹을 자를 수 있고, 뒤늦은 규제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도와 방향, 강도 사이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정책 당국에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일 것입니다.
개인 투자자와 시장 참여자들에게도 명확한 이해는 생존과 성장의 필수 조건입니다. 내가 투자하는 자산이 단순한 유틸리티 토큰인지, 아니면 특정 사업의 수익을 청구할 권리가 담긴 토큰 증권인지, 혹은 단지 예술적 가치를 지닌 NFT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법적 성격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권리와 부담해야 할 위험, 그리고 적용되는 법적 보호 장치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묻지마 투자’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기술과 법률, 그리고 경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물론, 디지털 자산의 미래가 장밋빛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기술적 취약성, 규제 리스크, 극심한 변동성,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디파이(DeFi)의 익명성과 탈중앙성의 틈을 노리는 불법 자금 문제 등 수많은 도전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기존의 질서가 해체되고 재편되는 과정을 반복해왔습니다. 인쇄술이 지식의 독점을 무너뜨렸고,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이끌었으며, 인터넷이 정보의 유통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처럼, 분산원장기술과 디지털 자산은 신뢰를 생성하고 가치를 이전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며 또 한 번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이 새로운 물결을 무조건적으로 예찬하거나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위험을 현명하게 관리하며, 그 안에 담긴 혁신의 잠재력을 우리 사회와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본 글이 디지털 자산과 암호화폐라는 미지의 대륙을 항해하는 모든 분들께 신뢰할 수 있는 지도와 나침반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학습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자신만의 항해술을 연마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분명 새로운 자산의 시대가 열어주는 무한한 기회의 바다에서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미래는 명확한 이해와 유연한 대응을 하는 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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